Hellow, Friends
이지혜, 구미문화예술회관 전시기획자
A. 이재호 ≒ 몬스터
몬스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위로 이재호 작가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석고데생에서 '아그리파 (Agrippa)' 조각상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 같은 조각상을 그리더라도 자신의 얼굴과 비슷하게 그린다는 것이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작가의 경험으로 빚어진 존재들이라 더욱 그러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그렇기에 그의 몬스터를 살펴보면 얼추 그를 알 수 있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가 소속된 대학은 아카데믹한 작업 방식을 추구하던 곳이었고, 그것에 실증을 느낀 이후 '내 작업', '내 것'을 찾기 위해 여러 작업을 끄적였다. 누군가 '괴물도감'이라 일컬은 초기 작업들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프로세스처럼 보인다. 2011년부터 시작된! 몬스터 시리즈는 여러 변천과정을 통해 현재의 몬스터로 탄생하였다.
몬스터는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서 출발 한다. 작가노트를 인용하면 몬스터는 “사회 속에서 다르다고 인식되어 격리되고 외면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매개체”이다. 유년시절 소극적인 성격 탓에 늘 혼자 외로움을 견뎠던 시간, 청년미술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문제의 '결여'가 몬스터에 담겨있다. 그렇다고 해서 결여의 감정들이 비단 어둠의 감정들로 표현된 것은 아니다.
그 일례가 2013년에 제작된 다리가 6개인 고양이 < 호야호야 >에서 잘 나타난다. 작가는 우연히 2개의 다리로 태연히 앉아 있는 고양이 사진을 접하게 된다. 이때 작가는 고양이를 통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숨기거나 불편해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곤 그 고양이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고자 6개의 다리를 가진 고양이 인형을 제작했고, 작가의 어릴 적 애칭 '호야라고 이름 지었다(경상도에선 친근한 사람에게 이름의 끝 글자를 애칭으로 부르곤 한다). 작가는 늘 혼자였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불안들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적극 활용 했다.
이러한 내적 성찰과 자각으로 탄생한 몬스터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왜 몬스터였을까? 내가 처음 이재호를 만났을 때의 첫 이미지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전시 준비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로 인해 점점 사라졌는데, 그때 “저 사람 안에 잠재된 몬스터가 있으니 몬스터를 그릴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11년 그는 관심 있는 것들을 드로잉하기 시작했고,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 만화, 지브리 영화 등이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전시장 가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높이 4.5m, 폭 6.8m의 거대한 벽의 몬스터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 이웃집 토토로 >의 신비로운 숲의 정령 토토로를 떠오르게 한다. 무언가 신비로운 잠재력을 가진 생명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건 내가 작가에게 느꼈던 감정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과 연계하여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몬스터의 존재가 더욱 환상적으로 보인다.
자, 이제 이번 전시를 살펴보자. 전시장에는 46 마리의 몬스터가 살고 있다.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한 전시장은 그들의 서식지가 되었다. 호랑인가? 사자 인가? 고양이 같기도 하고?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여러 가지 동물 형상이 뒤섞인 '몬스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이다. 또한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들이다. 늘 결에 존재했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고, 관심 가지지 않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내는 몬스터는 소회와 외면의 상징물 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눈빛과 태도에서 타인 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경계 태세를 갖추는 동시에 상대방을 신기한 듯 뚫어지게 응시한다. 이 친구들을 통해서 '타인과 나', '나는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인가라는 관계에 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특히 2021년도 신작 < 버블 몬스터 bubble monster >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거품과 나무, 꽃잎 등에 몸을 숨겼다. 껍질만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일까? 본래의 방어기제로 가득 찬 날카로운 눈빛은 온데간데없다. 이는 때때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 채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겉모습과 태도를 바꾸는 거짓 행동의 은유이다. 본래의 나의 모습도 누군가에게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인데,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욕심 때문일까. 타인의 내면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다름을 인정하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